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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 - 주중상춘도, 송하관폭도, 경답목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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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윤덕희 - 누각산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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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고 윤용 - 연강우색도.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조회 수 16122 추천 수 0 2014.03.14 09:54:48
작가 및 소장자 : 가칭 윤두서, 홍익대박물관 
크기 및 재질 : 34 x 44cm 5폭 
작품 간략 설명 : 선조 때의 경수연 행사를 그린 것이다. 선조 38년 1605년 4월9일에 70세 이상의 노모를 모신 신료 13명이 수친계(壽親稧)를 결성하고 장흥동의 한 저택에서 모친을 위해 경수연을 열었던 일을 기념한 것이다. 의령남씨가전화첩. 

이익의 성호전집 경수연도서(慶壽宴圖序)에 보면

 

"처사 윤구(尹俅)는 판서 윤돈(尹暾, 1551~1612)의 후손으로서 당시에 이미 도화(圖畫)가 세상에 전해졌는데, 사문(斯文) 윤두서(尹斗緖)에게 별도의 그림첩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사문은 그림을 잘 그리며 또한 판서의 외예(外裔)가 되니,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일을 구상하여 추진하였다. 이에 비로소 진적(眞蹟)을 남기게 되었고 마침내 윤씨(남원윤씨) 집안의 보장(寶藏)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아래의 그림들이 의령남씨 집안에 전해져 온 것이라면 공재선생이 남원윤씨 집안에 그려준 작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선조 38년(1605년) 4월9일 장흥동에 있는 예조의 부속건물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게 되었는데 바로 그 장소를 그린 작품으로 공재선생의 작품도 이와 같은 그림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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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선조 때의 경수연 행사를 그린 것이다. 선조 38년 1605년 4월9일에 70세 이상의 노모를 모신 신료 13명이 수친계(壽親稧)
를 결성하고 모친을 위해 경수연을 열었던 일을 기념한 것이다.


이 행사의 발단은 계원 중 한 명인 이거(李蘧)의 모친 채씨부인(蔡氏夫人)이 1603년 100세를 맞이하자 왕이 그 아들에게 관작을 더하고 상을 주게 하는 등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일이었다.


이 로부터 3년째 되던 1605년에 수친계의 계원들은 장흥동의 한 저택에서 경수연을 벌이게 되었는데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음식과 악공을 내려주어 행사가 더욱 장대하게 치루어졌다. 이 행사에서 채씨부인이 102세로 가장 연장자였고 품계는 진흥군(晋興君) 강신(姜紳)의 모친인 정경부인 윤씨가 가장 높았다. 


채부인은 백세로서 북벽에 앉았고 진흥대부인은 명부(命婦), 즉 봉작(封爵)을 받은 부인으로서 같이 북벽(主壁)에 앉았다. 그 나머지 여덟 명의 대부인은 지위에 따라 동서로 나누어 앉았다. 여러 부인의 숫자는 대부인과 같았으며 대부인의 뒷줄에 앉았다. 가마와 수레가 거리에 가득 찼고, 음악이 일제히 연주되자 여러 재신들은 돌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 축수의 잔을 올리고, 차례로 일어나 춤을 추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은 부러워서 탄식하기를 세상에 보기 드믄 성대한 일이라고 하였다. 100세까지 장수함은 거의 없는 일이요 겨우 있을까 말까할 정도이다. 같은 자리에 함께 모인 기타 재신들의 대부인으로 70이상이 된 분도 9명이나 되었으니 또한 어찌 성대하지 않으랴.


이 경수연 행사에 참여한 남이신(南以信, 1562-1608)은 남재의 8세손으로 1590년 선조 2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1593년 승정원가주서가 되었으며 주서・세자시강원문학・예조정랑을 지냈다. 남이신은 1605년 당시 동지중추부사에 이어 형조참판을 역임하고 있었으며, 모친 신사헌(愼思獻)의 딸 거창 신씨(居昌愼氏)는 1536년생으로 그 해에 70세가 되어 경수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25) 남이신의 모친 신씨는 이후 5년을 더 살아 75세까지 장수하였다. 남이신(南以信) 외에 그의 아들 남두첨(南斗瞻, 1590-1656)과 조카 남두환(南斗煥, 1591-?)도 집사자제(執事子弟)로 경수연에 참여하였음이 「경수연절목」에 보인다.


이 행사는 그림으로 그려져 기념되었으며, 이후 부로(父老)의 이야기 거리가 되어 후세에 두고두고 미담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 그림은 병자호란 중에 소실되어, 50년이 지난 1655년에는 경수연에 참석했던 사람 중 누구도 그림을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이에 채대부인의 손자로서 그 행사에 집사자제로 참여했던 이문훤(李文藼)이 자신이 왕년에 경수연 행사에 참여하며 직접 목도했던 장관(壯觀)을 자식인 이관(李灌)에게 이야기하며 화첩을 다시 꾸미도록 시켰다.


"내가 백세대부인의 손자로서 경수연이 열릴 당시에 집사자제의 행렬에 끼이게 되어 성대한 행사를 직접 목도하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당시의 일을 그린 그림이 전쟁통에 분실되었다. 당시 참석한 자제들이 모두 신세가 형편없고 오직 나만 생존해 있지만 이미 늙었다. 지금 그 행적을 전하지 못하면 후대에 보일 수 없다. 화사에게 부탁하여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 사실을 기록하여 첩으로 만들어 제대로 전달함이 네가 할 일이니 너는 힘써 행하여라."


이관은 부친 이문훤의 명에 따라 화첩을 꾸몄는데, 그것이 1655년의 일이다. 이문훤은 당시 참여했던 집사자제들의 근황을 잘 알고 있었고, “지금 그 행적을 전하지 못하면 후대에 보일 수 없다”라고 말했던 점을 감안할 때 1655년 당시에 경수연의 원그림은 어느 집안에도 전해지지 않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이관의 주도하에 경수연 그림이 그려지고 이경석과 허목의 서문이 덧붙여져 《경수연도》가 제작되었고, 이는 계원들의 후손 집에 한 본씩 다시 배포되었다.


그런데 당시 수친계의 계원 중 하나였던 공조판서 윤돈(尹暾)의 후손인 윤구(尹俅)는 당시 학자이면서 그림 잘 그리기로 유명하였던 윤두서에게 경수연 그림을 별도로 그려달라고 부탁하여 화첩을 꾸민 일이 있었다. 당시 “《경수연도》 그림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었으나, 윤두서는 윤돈의 외예(外裔)가 되기 때문에 윤구의 청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관이 제작하여 나누어 가졌던 《경수연도》를 윤구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이름난 문인화가이자 인척이던 윤두서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던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17세기말~18세기 초에 이관이 제작하여 여러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던 화첩 이외에 윤두서가 그린 《경수연도》 화첩이 별도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봤던 윤두서가 그린 <서총대친림사연도> 를 감안할 때, 이 때 윤두서가 그린 《경수연도》도 서양화의 투시도법과 남종화풍을 수용한 격조 높은 작품이었으리라 추정된다.


이후 18세기말~19세기 초에 《경수연도》 화첩이 다시 한 번 제작된 내력이 기록으로 전해진다. 이거(李蘧)의 후손인 이방빈(李昉彬)이 1605년의 경수연 행사가 벌어진지 6-7세대, 즉 200년 가까이 흐른 때에 고가(故家)를 두루 탐색하여 한 두 본의 낡은 《경수연도》 본을 얻어 이를 묘사하고 화첩을 꾸몄다. 아울러 여러 후손들의 시편을 구하고, 홍양호 1724-1802 에게는 그 서문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는 이관이 주도하여 제작하였던 화첩을 모본으로 하여 18세기말~19세기 초에 다시 제작되었던 《경수연도》화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헌 기록을 토대로 제작 내역을 살펴보면 《경수연도》 화첩은 적어도 세 본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1605년에 제작되었으나 전쟁으로 유실된 《경수연도》 원본, 전란 이후 1655년에 이거의 후손이 제작한 이경석・허목의 서문이 있는 《경수연도》와 이를 토대로 1800년 무렵 홍양호의 서문을 붙여 제작한 이모본 《경수연도》, 1700년 무렵 윤두서가 그림을 그리고 이익이 서문을 붙인 《경수연도》이다.


현존하는 《경수연도》로는 의령남씨 집안에 가전되던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남씨전가경완》, 홍익대박물관 소장의 《의령남씨가전화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의 《경이물훼》화첩이 있고, 기록화의 구성과 도상을 달리한 또 다른 계열의 《경수연도》 화첩이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대중앙도서관에 있다. 단, 이들 모두 이경석과 허목의 서문을 동반하고 있어, 문헌기록으로 확인되는 《경수연도》 본들 가운데에서는 이관이 1655년에 제작한 화첩의 중모본들임을 알 수 있다.


1605년에 그려졌던 원그림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1655년에 이관(李灌)이 화사에게 청하여 그린 그림은 그 행사에 참여했던 이문훤이 기억한 모습을 충실히 반영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가마와 수레가 거리에 가득 찬 행랑채의 모습, 이관의 증조모이자 이거(李遽)의 모친으로 100세 생신을 맞이한 정부인(貞夫人) 인천채씨(仁川蔡氏)와 진흥군(晉興君) 강신(姜紳)의 모친 정경부인(貞敬夫人) 파평윤씨(坡平尹氏)가 북벽에 정좌 하고 나머지 대부인들이 동서벽에 나란히 앉은 연회의 모습, 악공이 음악을 연주하고, 재신들이 잔을 올리고 춤을 추는 모습이 서문에 언급되었는데, 이런 내용이 여러 폭에 나누어 모두 묘사되었다. 현존하는 두 계열의 《경수연도》는 3폭 혹은 5폭의 그림으로 이루어졌다.


기존에 기로연(耆老宴) 등의 행사 그림이 단폭으로 그려졌던 데에 반해 《경수연도》는 여러 장면을 연작 형식으로 나누어 그린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경이물훼》 화첩의 《경수연도》는 모두 다섯 점의 그림으로 이루어졌다. 제 1도는 행랑채에 손님들이 도착하여 가마와 수레가 가득한 모습을 그린 <행랑채 정경>이고, 제 2도는 야외에 설치된 조찬소에서 음식이 준비되는 모습을 그린 <조찬소 정경>이다. 왕이 각도에 명하여 특별히 음식을 마련하도록 했던 점이 강조된 것이라 여겨진다. 제 3도와 4도는 계원들과, 입시자제(入侍子弟) 및 집사자제(執事子弟)의 모습을 그린 <계원 연회도>와 <집사자제 연회도>, 제 5도는 대부인(大夫人) 과 그 며느리들을 묘사한 <대부인 경수연도> 이다. 


이들 그림에서 건물과 연석(宴席)이 평행사선구도로 묘사되어 입체적으로 조감되었으며, 연회의 장면과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이들을 둘러싼 건물, 담장, 장막 등의 장치는 과감하게 잘려서 파격적인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이는 연회의 장면을 정면으로 부감한 다른 《경수연도》 본들과는 다른 특징으로, 의령남씨 집안에 전해진 화첩에만 나타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참고

조선시대 궁중행사의 회화적 재현과 전승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경이물훼(敬而勿毁) 화첩의 분석
유미나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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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당나귀를 타고 있고, 시동(侍童)은 뒤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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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년 [계미년 (癸未年)], 제작 연대를 기재해 더욱 의미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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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및 재질 20.5㎝ 38.5㎝, 

작품 간략 설명 종이에 옅게 채색하여 그린 이 그림은 화폭 전체에 얼굴만이 그려지고 몸은 생략된 형태로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윗부분을 생략한 탕건을 쓰고 눈은 마치 자신과 대결하듯 앞면을 보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에 수염은 터럭 한올한올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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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수조도(夕陽水釣圖)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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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및 재질 43.5 x 21.6cm, 견본수묵 

작품 간략 설명 1706년 이형상이 영광군수를 사직하고 영천으로 돌아온 직후 진사 윤두서에게 오성진을 그리게 하여 벽감에 안치해 두고 때때로 분향하고 추모하였다한다. 기자, 주공, 공자, 안회, 주자를 각각 한폭씩 그렸으며, 표구의 크기는 64 x 33cm이고, 1978년 문화재관리국의 자료조사에 의해서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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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및 재질 17.1 x 11cm, 견본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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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및 소장자 윤두서, 국립중앙박물관 

크기 및 재질 10.5 x 9.9cm, 견본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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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조도(宿鳥圖) - 가물첩 25면 file

작가 및 소장자 윤두서, 국립중앙박물관 

크기 및 재질 23.1 x 13.4cm, 지본수묵 

작품 간략 설명 홍남순 소장. 가늘고 긴 줄기와 큰 대나무 잎을 배경으로 한마리의 새가 서 있는 작품으로 날개는 거친 붓 몇번으로 처리했고, 아랫쪽 배부분은 가는 선 몇개로 그려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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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도(屠龍圖) - 가물첩 1면 file

작가 및 소장자 윤두서, 국립중앙박물관 

크기 및 재질 8.2 x 7.8cm, 나무에 수묵 

작품 간략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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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고천도(焚香告天圖) - 가물첩 27면 file

작가 및 소장자 윤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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