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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선생문집(星湖先生全集) - 이익

조회 수 7559 추천 수 0 2014.03.08 11:01:54

星湖先生全集卷之四十八



十二聖賢畫像帖贊 幷序

열두 성현을 그린 화상첩에 대한 찬 병서〔十二聖賢畫像帖贊 幷序


道在天地間。亘萬古而悠久。歷千聖而同轍。然時有汙隆。行不行繫焉。故聖如周公。其遇於世何如也。噫。風雅之變。自周公始。觀乎鴟鴞諸什。豈不三歎齎咨。夫聖人人倫之至。固無不渾全。然父子乖而後孝有大舜。君臣離而後忠有逄干。斯文否而後聖有周公孔子。子曰吾不復夢見周公。須看佗契入合處何在。而至於不復夢。則夫子之志亦熄矣。夫子匹夫也。逐於魯圍於匡。絶穀於陳蔡。伐樹於桓魋。鷇食鶉居。淹不席煗。而居然甚衰。雖欲制禮作樂爲百王法。其勢有所不及。故曰我述而不作。其意亦悲且切矣。孟子曰由文王至於孔子。五百有餘歲。興王之運。孔子而不徵矣。由周以來七百有餘歲。名世之數。孟子而過矣。然而無由乎爾則亦無有乎爾。道之不行。孟子已揣之熟矣。而况千四百歲之後。若宋之羣哲。搜尋於古紙。想像於長夜。猶切切然庶幾於時者遠矣。比之治疾。三代以前。診證投劑。起死回生。孔孟以後。百脈已散。轉成壞證。一節深一節。有良醫者囊丸。待試倚門而終亦莫之售能。宜其和緩縮手。蔘芝斂用。烏喙馬肝。往往遺毒也。是以由堯舜至文武其事達。由周公至朱子其心苦。達則裨世。苦以俟後。故遺訓炳烺。佑啓無竆。冠天屨地者。毫髮莫非遺澤也。此當時之不幸。而抑後人之幸歟。微斯吾其左袵而橫生矣。嗚乎。德卲者難名。恩大者不報。故海涵地負。終莫知其所以然也。今六經文字。無人不讀。淺者得其言。深者得其心。得其心而其人可得。猶以爲未至也。於是思得繪像而羹牆焉。此是帖之所以作也。昔我家兄西山公有友而藝曰恭齋尹孝彥。遊戲後素。號稱絶筆。公以四幅絹命意。周公爲一幅。孔子凭几。顔淵子游侍。曾子執策講道於前。合爲一幅。邵程三子拱立瞻仰于孟子眞。合爲一幅。朱子倚坐。黃蔡二子侍。合爲一幅。合十二像。恭齋敬諾。圖未成而公已作泉下人。俄而功訖。以公言送還家。實殫精而心貺。於幽明可寶也已。公遐遯優遊。與世抹摋。卒乃歸宿于訓謨之內。心焉嘐嘐。至欲揭圖而瞻企。其晩歲自重。此又可見。其志其事。烏可泯也。故瀷爲識並贊。使觀者有以知其顚末也。
도(道)는 천지 사이에서 만고(萬古)의 세월이 흘러도 유구(悠久)하고, 수천 명의 성인(聖人)을 거쳐도 궤도(軌道)를 같이한다. 그러나 시기에는 쇠퇴한 때와 융성한 때가 있으니, 도가 행해지고 행해지지 않는 것은 그것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주공(周公)과 같은 성인이 세상을 만난 것이 어떠하였던가.
아, 풍(風)과 아(雅)의 변화가 주공 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치효(鴟鴞)〉 등 여러 편의 시를 보자면 어찌 재삼 탄식이 나오지 않겠는가. 성인은 인륜에 있어 지극한 분이니, 본래 완전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부자(父子)의 도가 어그러진 뒤에야 대순(大舜)과 같은 효자가 있었고, 군신(君臣)의 사이가 멀어진 뒤에야 관용방(關龍逄)과 비간(比干) 같은 충신이 있었으며, 사문(斯文)이 비색(否塞)된 뒤에야 주공, 공자(孔子)와 같은 성인이 있었다.
공자가 “내가 꿈속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공자가 주공의 마음과 맞아 들어가 합치된 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로되, 공자가 주공을 다시 꿈에서 보지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면 부자(夫子)의 뜻 역시 사그라진 것이다. 부자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노(魯)나라에서 쫓겨나 광(匡) 땅에서 포위되었으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사이에서 양식이 떨어졌으며, 환퇴(桓魋)로부터 나무를 베어 버리는 위협을 당하였다. 새의 새끼처럼 아무렇게나 먹고 메추라기처럼 거처도 없었으며, 자리가 덥혀질 새도 없이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다가 어느덧 노쇠해져 버렸으니, 비록 예(禮)를 제정하고 악(樂)을 만들고 백왕(百王)의 법도를 세우고자 했더라도, 그 형세가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전술(傳述)만 하고 창작(創作)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으니, 또한 그 심정은 슬프고도 절박한 것이었다.
맹자(孟子)가 “문왕(文王)으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가 500여 년이다.”라고 하였으니, 왕자(王者)가 흥기할 운세는 공자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징험되지 않았으며, “주(周)나라 이래로 700여 년이다.”라고 하였으니,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나오는 연수(年數)는 맹자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갔다. 또 말하기를 “그런데도 아무도 없으니, 그렇다면 또한 아무도 없겠구나.” 하였으니,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맹자는 벌써 깊이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1400년 뒤에 살았던 송(宋)나라의 여러 선철(先哲)들이 옛 경서를 통해 도를 탐구하고 기나긴 밤에도 성현을 상상하면서 오히려 간절하게 당시에 도가 행해지기를 바랐던 상황으로 말하자면, 더욱 가망이 멀어진 것이었다. 병을 다스리는 것에 비유하건대, 삼대(三代) 이전에는 증세를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여 죽어 가는 사람을 되살렸지만, 공자와 맹자 이후로는 몸의 모든 혈맥(血脈)이 이미 약해지고 고질병으로 변하여 점차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훌륭한 의사가 약주머니 속에 약을 준비하여 시험해 보기를 기다리며 문에 기대어 있다가 끝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와 같다고 하겠다. 화(和)와 완(緩)이 손을 움츠리고 산삼(山蔘)과 지초(芝草)도 쓰이지 못하였으며, 오훼(烏喙)와 마간(馬肝)이 왕왕 해독을 끼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으로부터 문왕과 무왕(武王)까지는 왕도(王道)가 시행되었고, 주공으로부터 주자까지는 마음이 고달팠다. 왕도가 시행되면 당세에 도움이 되고, 마음이 고달프면 후세(後世)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성현이 후세에 남긴 가르침이 찬란하고 후세를 도와 계도함이 무궁하여 천지간의 사람들로서 조금이라도 그 유택(遺澤)을 누리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이것은 당시에는 불행이었지만 후인(後人)에게는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왼쪽으로 옷깃을 여미는 오랑캐가 되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 덕이 높으면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은혜가 크면 보답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바다처럼 드넓고 땅처럼 광대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면, 끝내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육경(六經)의 문자를 읽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식견이 얕은 사람은 그 말을 터득하고 식견이 높은 사람은 그 마음을 터득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터득하여 성현을 알게 되더라도 오히려 미진하다고 여기면, 이에 화상을 구하여 추모할 것을 생각하니, 이것이 바로 화상첩(畫像帖)이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나의 가형(家兄) 서산공(西山公)의 벗으로 기예(技藝)가 남다른 분이 있었으니, 바로 공재(恭齋) 윤효언(尹孝彦)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겨서 세상에 뛰어난 화가로 일컬어졌다. 공은 네 폭의 비단에 화상을 그리는 구상을 말해 주었는데, 주공이 한 폭이며, 공자가 안석(案席)에 기댄 가운데 안연(顔淵)과 자유(子游)가 곁에서 모시고 증자(曾子)가 앞에서 간책(簡冊)을 잡고 도를 강론하는 모습이 합하여 한 폭이며, 소옹(邵雍)과 정호(程顥), 정이(程頤) 세 분이 맹자의 진영(眞影) 앞에 공수(拱手)하고 서서 우러러보는 모습이 합하여 한 폭이며, 주자가 기대어 앉아 있는 가운데 황간(黃榦)과 채원정(蔡元定) 두 분이 곁에서 모시고 있는 모습이 합하여 한 폭이니, 모두 12상(像)이었다. 공재가 공경히 승낙하였으나, 그림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공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얼마 뒤에 화상이 완성되자, 공의 유언(遺言)을 전하며 우리 집으로 보내왔다. 참으로 정성을 다하여 그린 마음의 선물이니, 저승에 계신 분이나 이승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보배로운 그림이다. 공은 속세를 떠나 우유자적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다가, 마침내 성현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마음속의 포부를 크게 지녔는데, 성현의 도상(圖像)을 벽에 걸어 두고 앙모(仰慕)하려고까지 하였으니, 만년(晩年)에 자중(自重)하던 모습을 이를 통해 또한 볼 수가 있다. 어찌 공의 뜻과 일을 사라지도록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지문(識文)과 아울러 찬(贊)을 지어 이 화상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전말(顚末)을 알도록 하는 바이다.


任天下重。懷萬世憂。德旣莫卲。功亦與優。三兼四施。禮樂載盛。夢寐儀刑。維聖知聖。第一贊
鳳逝麟廢。道寄方策。孰確而傳。曾以魯得。彼回曁偃。右侍左尙。嗚乎先師。儼若遺像。第二贊
子在道在。子亡道絶。河南伯叔。亦粤康節。尋緖勃興。七編揆一。畫中之聖。景仰惟哲。第三贊
禮法從容。仁義爲府。自道也是。莫復敢諭。彼見而知。維黃蔡徒。得師爲歸。懿歟夫夫。第四贊


천하의 중임을 맡았으며 / 任天下重

만대의 걱정을 품었도다 / 懷萬世憂

덕이 이미 높은 데다 / 德旣莫卲

공적 또한 넉넉하였네 / 功亦與優

삼왕(三王)을 겸하여 네 가지 일 시행하니 / 三兼四施

예악이 성대하도다 / 禮樂載盛

꿈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 / 夢寐儀刑

성인만이 성인을 알았도다 / 維聖知聖


이상은 첫 번째 찬이다.


봉황이 떠나고 기린이 사라지자 / 鳳逝麟廢

도를 방책에 붙였는데 / 道寄方策

그 누가 확고하게 전수하였나 / 孰確而傳

증자가 노둔함으로 도통(道統)을 이었으며 / 曾以魯得

저 안회(顔回)와 언언(言偃)이 / 彼回曁偃

좌우에서 모시고 받들었으니 / 右侍左尙

아, 선사께서는 / 嗚乎先師

엄숙하기가 유상과 같도다 / 儼若遺像


이상은 두 번째 찬이다.


맹자 생전에는 도가 있더니 / 子在道在

맹자 사후에는 도가 끊겼네 / 子亡道絶

하남 정씨(程氏) 형제가 나고 / 河南伯叔

소강절(邵康節) 또한 함께 나와서 / 亦粤康節

도통을 찾아서 흥기시키니 / 尋緖勃興

《칠편》의 법도도 한 가지라네 / 七編揆一

그림 속에 계신 성인을 / 畫中之聖

철인들이 존모하여 우러러보네 / 景仰惟哲


이상은 세 번째 찬이다.


예법을 조용히 실천하고 / 禮法從容

인의를 부고(府庫)로 삼아 침잠함이 / 仁義爲府

스스로 가야 하는 길이건마는 / 自道也是

다시 감히 깨우치는 사람 없었네 / 莫復敢諭

주자를 보고서 알았던 이가 / 彼見而知

오직 문도인 황간과 채원정으로 / 維黃蔡徒

바른 스승을 얻어서 귀의했으니 / 得師爲歸

훌륭하여라 저 장부들이여 / 懿歟夫夫


이상은 네 번째 찬이다.

 

星湖先生全集卷之五十六

題跋

書東坡軟竹帖

《동파연죽첩》에 쓰다〔書東坡軟竹帖〕


杜甫善言畫。有尤工遠勢。咫尺而萬里之語。文與可得之。爲篔簹偃竹圖。寄與東坡曰。此竹數尺而有萬尺之勢。乃東坡善取人者也。兔起鶻落。心諭其意。故此帖幅才滿尺。幹必盈把。柔條嫩葉之間。時露數節。蜩腹蛇蚹。莫不有劒拔十尋之氣。直是取材於篔簹。奪胎於與可也。昔先君子得於燕市。兼有南宮跋筆。可爲雙絶。恭齋尹孝彥見之曰此軟竹圖也。非坡不能。其言殆可信。

두보(杜甫)는 그림에 대해 말을 잘하여 “특히 잘 그린 먼 곳의 형세는 한 폭의 짧은 그림에서 만 리의 경치를 보여 준다.”라고 하였다. 문여가(文與可)가 이 말에 따라 〈운당언죽도(篔簹偃竹圖)〉를 그려 소동파(蘇東坡)에게 부쳐 주면서 말하기를 “이 대나무는 몇 자〔尺〕에 불과하지만 일만 자의 기세를 지니고 있다.”라고 하였으니, 소동파는 사람을 잘 골라서 사귀는 사람이다. 토끼가 굴 밖으로 나오면 송골매가 곧바로 내려와 낚아채듯이 재빨리 그림을 그리라고 한 그의 말뜻을 소동파가 마음 깊이 이해하였으므로, 이 화첩의 폭이 겨우 한 자밖에 되지 않고 줄기가 한 옴큼밖에 되지 않으며 부드러운 가지와 어여쁜 잎사귀 사이에 매미의 배나 뱀의 비늘처럼 이따금 몇 개의 마디가 나와 있는 정도이지만 어느 것 하나 열 길〔尋〕의 칼을 뽑아 든 기세를 지니지 않은 것이 없다. 이는 곧 운당(篔簹)에서 소재를 취하여 문여가의 영향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이 그림은 예전에 선친이 연경(燕京)의 시장에서 구입한 것으로, 남궁(南宮)이 쓴 발문이 함께 들어 있는데 그림과 글씨가 모두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공재(恭齋) 윤효언(尹孝彦)이 이를 보고 “이것은 〈연죽도(軟竹圖)〉인데 동파가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이 거의 믿을 만하다.


星湖先生全集卷之五十七

제문(祭文)

윤 진사 두서 에 대한 제문〔祭尹進士 斗緖 文〕

嗚呼。昔公辱與不佞兄弟遊。或抗言死國則公曰匹夫而懷邦。舍命而成仁。忼慨拔俗者也。或竆居講學則公曰日孜孜而勉焉。惟好善其不足。善量己不願外者也。至若不佞之貿貿迷行。而謂若有才可稱。有志可尙然者。裒然肯許曰可與共學者也。不佞兄弟不自信。而得公言爲重。死者無憾。生者益厲。公庶幾不失人矣。不佞亦嘗出而悅公之風彩。入而思公之所存曰。言要有物。行要有矩。其士而希賢者乎。接人也恭而寬。賢愚莫不得其歡。其善與人交者乎。臨事敏而中。其藝而不局者乎。嗚呼。公沒而友道孤矣。無從而聞所未聞矣。不可復見其抑抑風裁矣。有才無命天也。公所不以爲意。或以惜之者。非知公者也。餘事曲藝。自臻於妙。或以贊歎焉者。累公之甚也。嗚呼。世之知公。其不淺之爲丈夫者幾人。此尤可悲矣。


아, 지난날 공이 우리 형제와 교유할 때의 일이다. 형제 중에 나라를 위해 곧은 말을 하다 죽는 모습을 보고는 공이 말하기를 “필부의 신분으로 나라를 사랑하여 목숨을 버리고 인(仁)을 이루었으니, 비분강개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다.”라고 하였고, 또 곤궁하게 살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는 공이 말하기를 “날마다 부지런히 학문에 힘쓰고 항상 선(善)을 추구하니, 자신의 처지를 잘 헤아려 외부의 명예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어지럽게 길을 헤매는 것을 보고는 “칭찬할 만한 재주가 있고 높이 살 만한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였고, 우리 형제를 한꺼번에 묶어서 “함께 공부할 만한 사람들이다.”라고 하며 인정해 주었다. 우리 형제가 자신의 재능을 믿지 못하다가 공의 이러한 칭찬을 듣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공의 칭찬 덕분에 죽은 형님도 여한이 없게 되었고 살아 있는 형제들도 더욱 분발을 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공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일찍이 공의 풍채를 좋아하고 공이 지닌 뜻을 사모하여 “말에 진실함이 있고 행동에 법도가 있으니, 현인이 되기를 바라는 선비가 아니겠는가. 남을 대할 때 공손하고 관대하여 어진 이나 보통 사람이나 모두 공을 좋아하였으니, 남들과 잘 사귀는 분이 아니겠는가. 하는 일마다 민첩하고 중도에 맞았으니, 다방면의 기예를 갖춘 분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아, 공이 세상을 떠나자 벗들만 외롭게 남게 되어 이제는 새로운 말을 들을 수 없고 더 이상 아름다운 풍모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오래 살지 못한 것은 하늘의 뜻이라 공이 이를 개의치 않을 것인데, 혹시라도 이를 안타까워한다면 이는 공을 잘 아는 것이 아니다. 나머지 소소한 기예들도 오묘한 경지에 올랐는데, 혹시라도 이를 가지고 칭찬을 한다면 공에게 아주 큰 누를 끼치고 말 것이다. 아, 세상에서 공을 깊이 아는 대장부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 점이 가장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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