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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 - 주중상춘도, 송하관폭도, 경답목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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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윤덕희 - 누각산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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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고 윤용 - 연강우색도.

규택규초상화

2016.10.21 11:58

master 조회 수:1248

윤위의규택규초상화.jpg



지난 2012년 가을 관복차림의 문신 흉상 한 점이 프랑스에서 들어와 국내 옥션에 출품된 적이 있다. 당시 이 그림은 유찰됐지만 지난 2014년 서울역사박물관이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으로 인해 해남윤씨가에 또 하나의 뛰어난 화가가 있었음이 알려지게 됐다.
이 그림은 비단에 59.1×42.2cm 크기의 흉상그림과 113.5×57.5cm 크기의 족자로 꾸며져, 초상화를 제작할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흉상의 주인공은 영조시절 고위직 관료로 활동한 구택규(具宅奎, 1693~1754)라는 인물로 숙종 40년(171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요직을 두루 거친 이다.


구택규 초상화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돼 있는데 또 다른 그의 초상화가 나온 것이다. 삼성미술관에 소장된 구택규 초상화는 어진화가 장경주(張景周, 1710~1775)가 1746년 53세의 구택규를 그린 반신상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나온 구택규의 초상화는 누구의 작품일까.


공재 윤두서의 손자인 윤위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해남윤씨가는 공재 윤두서에 이어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에 이르는 3대 화가 집으로 알려져 있다. 3대에 걸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적 재능이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예술적 DNA가 혈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에서 돌아온 문인관료의 초상화가 공재 윤두서의 손자 중 한명인 윤위로 밝혀진 것이다. 윤위(1725~1756)는 윤두서의 여덟번째 아들인 윤덕현(尹德顯)의 장남이며 윤용과는 사촌관계다.
지금까지 공재의 손자 중 윤용(1708~1740)만이 화가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손자인 윤위의 작품이 나타나면서 그도 공재의 뛰어난 화맥을 잇고 있음이 나타났고 인물화 표현에 있어 공재 자화상 화법을 잇고 있음도 밝혀졌다.
옥션 경매에 나온 구택규 초상화가 윤위의 작품이라는 것은 미술사 전공인 명지대 이태호 교수에 의해 밝혀졌다.


그림의 아랫단에 있는 화기(畵記)에 예서체로 윤위가 그림을 그린 경위가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화기의 내용에는 “이 초상은 선비 윤위가 모사하였다. 윤 씨는 일찍이 내 아버지를 잠깐 본 뒤 돌아와서 초상을 그렸다. 경진년(1760년)에 비로소 사람들에게 얘기를 듣고 삼가 구해서 장황했고, 앞서 그린 두 초상화와 함께 모시게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윤위의 구택규 초상화는 어진화가 장경주가 그린 구택규 초상화 작품의 모사작품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그린 구택규 초상화는 한 사람의 솜씨라고 생각될 정도로 유사하다. 그러나 장경주의 구택규 초상화는 반신상을 그린 것이고, 윤위가 그린 것은 얼굴 부위만 더 강조해 그린 흉상이다. 이 그림을 보면 공재의 자화상처럼 얼굴부위를 강조해 그린 것으로 비록 모사작품이기는 하지만 공재의 독특한 화법을 이은 것을 볼 수 있다.


윤위가 그린 구택규 흉상은 윤두서의 자화상을 연상하게 할 만큼 50대 사대부 문관의 고고한 품위를 잘 묘사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불구불 세심한 선묘의 희끗희끗한 수염이나 붉은색 입술, 살짝 음영을 넣은 기법은 윤두서 자화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 섬세하다. 
제작 시기로 보면 윤위의 구택규 흉상이 더 늦어 윤위가 장경주의 구택규 반신상을 모사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천재의 삶은 항상 짧은지도 모른다. 윤위는 48세에 죽은 공재보다 더 이른 나이인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재 손자인 윤용도 32세로 요절했다. 따라서 윤위와 윤용은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지만 집안의 화맥을 충실히 잇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택규 초상화 발견으로 윤위가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지만 윤위의 회화세계는 여전히 생소하다. 그러나 18세기 새로운 학문과 예술을 선도하고자 했던 해남윤씨가의 예술혼을 그가 지녔음을 느낄 수 있다.
윤위의 아들인 윤규범(尹奎範, 1752~1821)은 정약용과 두터운 교분을 쌓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고 하는데 정약용도 윤위의 문학세계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한편 윤두서는 1711년 초가을 5언시와 함께 간결한 수묵필치의 ‘우여산수도(雨餘山水圖)’를 어린 나이의 윤덕현에게 그려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윤덕현에게 전해진 공재 할아버지의 작품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을 윤위는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보길도지』와『당악문헌(棠岳文獻)』의 저술이다. 『보길도지』는 고산이 살았던 당시의 보길도 생활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책으로 보길도의 모습을 그림으로 스케치 하듯 잘 묘사해 놓고 있다.
또『당악문헌』은 해남윤씨가의 인물과 선대의 여러 자료들을 집대성해 정리한 것으로 문헌자료로서도 가치가 큰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윤위의 유고집으로「범재집(泛齋集)」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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